본문 바로가기
예술,예술!

예술학 48) 예술과 과학: 패턴, 질서, 그리고 우연

by taeyimoney 2025. 11. 12.

우리가 ‘예술’과 ‘과학’을 분리해서 생각하기 시작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는데,
고대 그리스어에서 ‘테크네(techne)’라는 단어는 오늘날의 예술과 기술을 함께 포함하는 개념이었다. 

 

플라톤에게 테크네는 ‘진리를 드러내는 인간의 능력’이었고, 아리스토텔레스에게는 ‘우연을 질서로 전환하는 행위’였다. 

 

즉, 예술과 과학은 출발부터 같은 뿌리였다.

인간이 세계를 이해하고자 할 때, 어떤 이는 감각으로 형상을 만들고, 어떤 이는 숫자와 논리로 구조를 세웠다.

하지만 두개 모두 패턴과 질서를 찾아내려는 동일한 본능에서 비롯되었다.

1. 질서를 향한 인간의 충동
자연은 무질서하게 보이지만, 그 안에는 숨겨진 규칙이 존재한다. 

바람의 흐름, 나뭇잎의 배열, 조개의 나선, 하늘의 별자리...

인간은 이런 반복과 대칭 속에서 안정과 의미를 느끼고, 예술가가 형태와 색을 조합할 때 느끼는 ‘조화’의 감각은

과학자가 수학적 법칙을 발견할 때 느끼는 순간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예들 들어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그 경계에 선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해부학 연구를 통해 인체 비례의 질서를 탐구했고, 그것이 ‘비트루비우스 인간’이라는 예술적 상징으로 나타났다.

다 빈치에게는 미의 탐구이자 과학이었으며, 그는 이렇게 적었다.
“예술은 과학의 딸이며, 과학은 예술의 어머니이다.”

이 문장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감각적 세계를 시각화하는 예술과, 보이지 않는 원리를 수식으로 표현하는 과학은 

결국 같은 구조적 감각의 두 언어인 것이다.

2. 패턴의 미학 — 수학적 질서로서의 아름다움
예술 속 ‘패턴’은 감정과 질서를 동시에 전달한다. 

고대 그리스의 신전 건축에서 황금비는 단순한 장식적 비율이 아니라, 우주적인 조화의 수학적 상징이었다.

 피보나치수열은 나선형 조개껍질이나 해바라기씨의 배열에서도 발견되는데, 인간의 미적 감각이 이 비율을 자연스럽게 아름답다고 느끼는 이유는 뇌가 본능적으로 자연의 수학적 질서에 반응하기 때문이다.

신경과학에서도 이런 현상을 뒷받침한다. 

영국의 신경학자 세미어 제키(Semir Zeki) 는 예술 감상 시 뇌의 시각피질이 ‘패턴 인식’에 반응한다고 밝혔다. 

인간은 예술 작품을 볼 때 단순히 감정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시각적 질서와 수학적 구조를 ‘해석’하고 있으며

예술은 뇌가 인식할 수 있는 감정의 수학이다.

음악 또한 수학의 예술이다.

바흐의 푸가는 복잡한 대위법 속에서도 완벽한 수학적 대칭과 변주를 보여준다.

바흐는 음정 간의 비율과 시간적 반복을 통해 감정을 수학화했다.

현대 물리학자 브라이언 그린은 “음악은 인간이 만든 가장 아름다운 물리학의 언어”라고 말한다.

3. 우연의 미학 — 혼돈 속의 창조
하지만 예술과 과학을 단지 질서의 언어로만 이해할 수는 없다.

모든 창조는 ‘우연’의 틈에서 발생한다. 

과학이 가설과 실험을 반복하는 이유도, 예술가가 즉흥적으로 붓을 휘두르는 이유도 

결국 예측 불가능성 속에서 새로운 패턴을 발견하기 위해서다.

20세기 현대 예술은 바로 이 우연의 힘을 탐구했는데, 잭슨 폴록의 액션 페인팅은 대표적이다.

그는 무작위적 드리핑(dripping)을 통해 ‘통제되지 않은 질서’를 만들어냈다.

흥미로운 점은 이후 물리학자 리처드 테일러(Richard Taylor)가 폴록의 그림을 프랙털 분석으로 연구했을 때,

그 속에서 자연의 난류와 유사한 수학적 패턴이 발견되었다는 사실이다.

무작위로 보이는 예술조차도 어떤 자연적 질서의 언어로 이어져 있었다.

과학에서도 마찬가지다. 

우연한 실수나 예측 불가능한 발견이 혁신의 계기가 된다. 

페니실린의 발견, 마이크로파의 원리, 우주의 배경복사 모두 우연에서 비롯되었다. 

결국 예술가의 직관과 과학자의 호기심은 우연을 질서로 바꾸는 능동적 인식의 힘이라는 점에서 동일하다.

4. 경계를 허무는 시대 — 데이터와 감성의 융합
21세기에 들어 예술과 과학은 다시 빠르게 결합하고 있다. 

데이터 시각화 예술, 알고리즘 아트, 생명공학을 이용한 바이오 아트, 인공지능이 그리는 회화 등은

모두 과학적 구조를 감성의 언어로 번역하는 시도다.

예를 들어 MIT 미디어랩의 연구자 니리 옥스먼(Neri Oxman) 은 생명체의 성장 알고리즘을 이용해

새로운 건축 구조를 만든다.

그녀는 “자연이 설계한 방식에서 예술적 해답을 찾는다”라고 말하고, 그 결과물은 과학적 실험이면서

동시에 미학적 조형물이다. 이렇듯 예술은 점점 감정의 실험실이 되고, 과학은 형태의 철학으로 확장된다.

또한 데이터 아트의 세계에서는 인간의 감정, 도시의 움직임, 사회적 네트워크를 실시간 데이터로 시각화함으로써

보이지 않는 구조의 미학을 드러낸다.

과학이 현실을 분석하는 언어라면, 예술은 그 분석이 만들어내는 감정의 울림이다.

5. 감성과 이성, 두 시선의 합류점
예술과 과학은 결코 대립적 관계가 아니다. 

오히려 서로의 결핍을 채운다. 과학은 객관적 진리를 찾지만, 예술은 그 진리를 인간의 감각 안에서 해석한다. 

과학이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라면, 예술은 이해를 느끼게 만드는 방식이다.

다시 말해 과학은 세상을 설명하고, 예술은 그 설명에 의미를 부여한다.
하나가 논리를 구축하고, 다른 하나가 그 논리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이 둘이 만날 때 비로소 인간은 단순히 아는 존재가 아니라 생각하며 느끼는 존재가 된다.

예술이 과학을 품을 때, 우리는 우주의 구조 속에서 아름다움을 느끼고,
과학이 예술을 품을 때, 우리는 아름다움 속에서 진리를 본다.

마지막으로.
예술과 과학은 서로 다른 길을 걷는 두 나그네가 아니다.
그들은 같은 진리를 향해, 서로 다른 언어로 노래하고 있을 뿐이다.
하나는 질서의 언어로, 하나는 감정의 언어로 그리고 그사이에 인간이 있다.
질서를 사랑하면서도 우연을 갈망하는, 가장 복잡하고 아름다운 존재로서.

예술과-과학-패턴-꽃-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