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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예술!

예술학28) 예술과 시간 — 창작은 어떻게 영원을 만든다

by taeyimoney 2025. 11. 4.

1. “예술은 시간을 붙잡으려는 인간의 본능이다.”
시간은 모든 것을 삼킨다.사랑, 젊음, 기억, 목소리 
심지어 가장 눈부신 순간마저도 흐름 속에 지워진다.
하지만 인간은 그 지워짐에 순응하지 않았다. 그는 손에 붓을, 악보를, 펜을 쥐었다.
그리하여 사라짐에 저항하기 위해 예술을 만들었다.

예술은 결국 시간에 맞서는 인간의 방식이다. 창작이란 단순한 표현이 아니라,
지금을 붙잡아 영원으로 전환하는 행위다.
우리가 한 폭의 그림, 한 소절의 음악, 한 장의 사진 앞에서 멈춰 서는 이유는
그 안에 사라지지 않으려는 인간의 흔적이 있기 때문이다.

2. 예술과 시간의 관계 — 흐름과 정지의 역설
예술은 시간과 싸우면서도, 동시에 시간의 일부다.
회화는 정지된 이미지를 통해 시간을 응축하고, 음악은 시간 위에서만 존재한다.
영화는 시간을 조립하고, 무용은 시간 속에서만 피어난다.

즉, 예술은 시간을 멈추려는 욕망과 흐르게 하려는 욕망의 공존이다.
정지와 움직임, 기억과 망각, 순간과 영원의 사이에서
예술은 자신의 형태를 찾아간다.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은 “시간은 공간처럼 잘릴 수 없는 흐름이다”라고 했다.
그에게 예술은 그 흐름의 ‘질적 경험’을 드러내는 행위였다. 예술가는 시계를 멈추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의 느낌을 고정한다. 그림 한 점은 시간의 한 조각이 아니라, 시간의 농축된 감정이다.

3. 모네의 시간 — 빛의 순환 속에서
모네의 연못을 떠올려보자.
그의 수련 연작은 한 장소를 수십 번, 수백 번 그린 기록이다.

그가 반복해서 그린 것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 자체였다.

모네는 빛이 변함에 따라 세계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관찰했다.
그에게 시간은 시계가 아닌, 빛의 변화 그 자체였다.
아침의 청명한 수련, 정오의 강렬한 반사, 해가 질 녘의 붉은 흔적 
모네는 그 모든 찰나의 변화를 캔버스 위에 겹겹이 쌓았다.

그의 그림은 시간의 정지된 순간을 담은 게 아니라,
시간이 흘러가는 감각을 포착한 것이다. 그는 눈으로 본 세계를 그리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가는 방식을 그렸다.

4. 살바도르 달리 — 영원을 향한 시간의 왜곡
모네가 흐름의 시간 속에 머물렀다면,
달리는 그 시간을 부수려 한 예술가였다.

그의 대표작 속에서
녹아내리는 시계는 인간이 만든 물리적 시간의 무력함을 상징한다.
그에게 시계는 더 이상 정확한 도구가 아니라,
기억 속에서 뒤틀리고 변형되는 심리적 시간의 은유였다.

달리는 예술을 통해 “시간은 고정된 게 아니다”라는 명제를 던졌다.
그의 왜곡된 풍경, 흐물거리는 공간은 시간이 인간의 의식에 따라 늘어나고 줄어드는,
내면의 주관적 세계임을 드러낸다.

그렇기에 달리의 회화는 초현실적이면서도
오히려 인간의 정신에 가장 가까운 시간의 감각을 재현한다.
그에게 예술은 시계를 파괴함으로써 영원을 창조하는 행위였다.

5. 마르셀 뒤샹 — ‘정지된 시간’의 실험
뒤샹의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 는 한순간의 움직임을 겹겹이 포착한 실험이었다.
그는 사진과 회화의 경계를 넘나들며 시간의 ‘연속적인 순간’을 한 화면에 담으려 했다.

그가 보여주고자 한 것은 움직임의 기록이 아니라,
시간이 공간 안에서 어떻게 시각화될 수 있는가였다.
이 실험은 후에 영화, 퍼포먼스, 개념미술의 출발점이 되었다.

뒤샹은 말한다.

“예술은 흐름의 흔적이다.
우리가 예술을 볼 때, 이미 그 시간은 지나간 것이다.”

그의 예술은 흐른 시간의 잔상으로서의 작품을 선언했다.
즉, 예술은 영원을 고정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이 흐르는 방식을 기록하는 것이다.

6. 예술과 죽음 — 사라짐을 담는 법
예술은 종종 죽음의 부정이라 불린다.
사라짐을 담는 행위, 즉 “죽음을 받아들이며 그것을 남기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카뮈는 “예술가는 현실의 무상함을 아름다움으로 번역한다”라고 했다.
그건 죽음을 지우는 게 아니라, 죽음을 의미화하는 일이다.
작품이 완성되는 순간, 시간은 멈추지만 그 안에는 살아있던 시간의 흔적이 남는다.
그 흔적이 바로 예술의 영원이다.

예술가는 죽음에 대항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
그 죽음을 작품 속에 품는다. 그래서 진정한 예술은 슬픔 속에서도 평온하다.
그건 ‘끝’의 인식에서 태어난, 가장 고요한 저항이다.

7. 철학적 사유 — 예술은 시간의 기억 장치다
발터 베냐민은 예술 작품을 “시간이 응축된 결정체”라고 했다.
그는 예술을 통해 과거의 기억이 현재에 소환되고,
그 순간 현재가 다시 재구성된다고 보았다.

이때 예술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시간의 재창조다.
작품을 보는 순간, 과거의 예술가와 현재의 관람자가
동일한 시간에 존재하게 된다. 예술은 과거와 현재, 작가와 관람자를 하나로 묶는 시간의 공명 장치다.

이 개념은 디지털 예술 시대에도 이어진다.
VR, AI, 인터랙티브 아트는 더 이상 정지된 예술이 아니라 흐르는 예술이다.
그 안에서 시간은 관람자의 움직임에 따라 재편성된다.
즉, 예술은 여전히 시간을 설계하는 실험을 이어가고 있다.

8.영원은 지금 다른 이름
예술은 시간을 멈추려 하지만,
결국 우리가 붙잡는 건 언제나 지금 이 순간이다.
그 순간이 영원이 되는 이유는 안에 인간의 의식과 감정, 그리고 기억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예술이란 결국 “시간을 영원으로 번역하는 언어”다.
그것은 시계를 멈추는 마법이 아니라, 흐름 속에서 의미를 만들어내는 인간의 힘이다.

모네의 붓, 달리의 시계, 뒤샹의 움직임은
모두 시간의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모두가 묻는다.

“너는 지금, 얼마나 살아있는가?”

예술은 시간을 붙잡지 못한다.
하지만 그 대신, 시간을 느끼는 법을 가르쳐준다.
그게 바로 예술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오래된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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