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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예술!

예술학49) 예술과 철학의 공통 언어: 사유의 형상화

by taeyimoney 2025. 11. 12.

우리가 예술을 떠올릴 때 흔히 감성, 감동, 영감을 말하며, 철학을 떠올리면 냉철한 이성, 논리, 개념을 생각한다.
하지만 둘의 경계는 그리 단단하지 않다.

오히려 예술과 철학은 서로의 그림자처럼 얽혀 있으며, 철학은 생각을 언어로 빚고, 예술은 그 생각을 형태로 만든다.
결국 둘 다 인간이 세계를 이해하려는 시도이며,
그 결과가 개념으로 나타나느냐 이미지로 나타나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1. 사유의 시각화, 철학의 감각화
플라톤은 예술을 철학의 모방이라 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카타르시스의 기능을 강조했다.
그들에게 예술은 진리를 직접 드러내는 수단은 아니었다.

그러나 르네상스 이후 인간의 인식이 중심이 되면서, 예술은 더 이상 단순한 모방이 아니라 인간의 내적 사유가 드러나는 시장이 되었다.
칸트는 “예술은 개념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을 감각 속에서 드러낸다”라고 했고, 이는 곧 사유의 형상화라는 예술의 본질을 함축한다.

예술은 철학의 언어가 닿지 못하는 곳에서 생각을 시각화한다.
한 철학자가 존재의 의미를 언어로 탐구한다면, 한 예술가는 그 존재감을 색과 빛으로 탐색한다.
둘 다 진리를 향하지만, 철학은 논리로, 예술은 직관으로 나아간다. 이 두 길이 만나는 지점이 바로 ‘형상화된 사유’다.

2. 형태로 생각하는 인간
인문과학자 마크 존슨(Mark Johnson)은 『몸의 의미』에서 “인간의 사고는 본질적으로 형상적(imaginative)이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개념을 추상적으로만 이해하지 않고 생각은 항상 이미지와 감각의 구조를 빌려 형성된다.
시간이라는 개념조차 우리는 직선적 흐름, 원, 나선 등의 이미지로 느낀다.
그렇다면 예술이란, 단지 감정을 그리는 행위가 아니라 인간 사고의 가장 원초적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이 점에서 철학은 논리를, 예술은 이미지를 담당한다.
화가 칸딘스키가 “점, 선, 면은 세계의 영혼을 구성한다”라고 말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에게 추상회화는 사유의 언어였고, 형태는 논리가 되고, 색은 존재의 진동이 된다.
칸딘스키는 철학자처럼 생각했고, 철학자는 그의 그림을 통해 보이지 않는 철학을 보았다.

3. 철학이 예술을 빚고, 예술이 철학을 낳는다
예술은 철학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역으로 철학을 확장해 왔다.
예를 들어 하이데거는 “예술은 존재를 드러내는 방식”이라고 했다.
그에게 예술 작품은 단순한 대상이 아니라, 존재가 자신을 드러내는 사건이었는데, 그의 철학은 반대로 현대 예술가들에게 깊은 영감을 주었다.
마크 로스코나 바넷 뉴먼의 색면회화는 하이데거적 존재론의 회화적 형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의 거대한 색의 면은 존재의 현전을 시각적으로 체험하게 만든다.

반대로 철학자들 또한 예술의 형상에 빚지고 있다. 니체의 『비극의 탄생』은 예술적 사유 그 자체다.
그는 아폴론적 질서와 디오니소스적 혼돈의 긴장 속에서 삶의 철학적 진실을 찾았다.
니체에게 예술은 철학의 해석이 아니라, 철학의 본질이었고, “예술이 없었다면 진리를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이 말은 예술이 단지 장식이 아니라, 철학의 존재적 구원임을 암시한다.

4. 언어의 한계와 형상의 자유
철학은 언어로 얘기하지만 언어는 구조적 한계를 지닌다.
언어는 시간적이고 선형적인 매체라서 동시에 여러 의미를 담아내기 어렵다.
반면 예술은 시각적이고 공간적이다.
하나의 이미지 안에 모순, 다의성, 시간의 흐름이 공존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예술은 언어의 한계를 넘어서는 비언어적 철학이다.

예를 들어 르네 마그리트의 회화 〈이미지의 배반〉에서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문구로 철학적 역설을 시각화했다.
그는 언어와 실재의 관계를 문제 삼았고, 이는 포스트 구조주의 철학의 핵심 사유와 맞닿는다.
예술은 철학이 말로만 표현할 수 있던 딜레마를 보이게 만든다.

반대로 철학은 예술이 표현한 형상의 의미를 해석하고 확장한다.
가스통 바슐라르는 회화와 시를 통해 인간의 공간적 상상력을 분석했고, 메를로퐁티는 세잔의 회화를 통해 지각의 철학을 발전시켰다. 그들의 철학은 예술을 생각의 실험장으로 본 것이다.

5. 현대 예술의 철학적 전환
20세기 이후 예술은 철학과의 관계를 더욱 밀접하게 재구성했다.
마르셀 뒤샹의 레디메이드(Ready-made) 는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 자체를 작품으로 만들었다.
그의 변기 작품 〈샘〉은 단순한 오브제가 아니라 예술철학의 실험이었다.
예술의 본질을 규정하는 권위와 맥락을 뒤집음으로써, 그는 철학적 논쟁을 시각화했다.
그 이후 개념미술, 행위예술, 미디어아트 등은 모두 예술의 존재론적 질문을 이어왔다.

오늘날 인공지능 예술, 알고리즘 회화, 디지털 아트 역시 철학적 사유의 실험장이다.
“창작의 주체는 누구인가?”, “기계의 표현은 인간의 감정을 대체할 수 있는가?”
이런 질문은 예술의 영역을 넘어서, 인간 인식의 본질을 묻는 철학적 질문이다.
결국 현대 예술은 단순히 형태를 만들지 않으며 그 자체가 철학적 생각의 장이 된다.

6. 생각의 형상화, 그리고 인간
예술과 철학은 모두 생각하는 인간을 중심에 둔다. 인간은 생각하지 않고는 살 수 없으며, 느끼지 않고는 존재할 수 없다.
생각이 감각을 만나면 예술이 되고, 감각이 생각을 만나면 철학이 된다.
둘의 경계는 흐릿하고, 그 사이에서 인간은 형태를 통해 자신을 이해하는 존재로 거듭난다.

우리가 한 작품을 보며 “이건 나 같다”라고 느끼는 이유는, 그 작품이 단순히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그 안에서 생각이 시각화된 나 자신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그 순간 예술은 철학이 되고, 감상은 사유가 된다.

오늘날  예술과 철학은 서로를 해석하는 두 언어다.
철학이 세상을 말로 생각한다면, 예술은 세상을 형태로 생각한다.
그 둘이 만날 때, 인간은 세상을 단순히 이해하는 존재가 아니라,
그 의미를 창조하는 존재가 된다.

예술은 철학의 눈으로 생각하고, 철학은 예술의 눈으로 세계를 본다.
그리고 그 시선의 교차점에서, 생각하는 아름다움이 탄생한다.

생각하는-두-남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