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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예술!

예술학56) 예술과 종교: 신성의 체험과 미적 경험의 차이

by taeyimoney 2025. 11. 13.

기도하는-모습

인류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예술과 종교는 처음부터 함께 있었다.
벽화, 조각, 음악, 춤 . 그것들은 단순한 표현이 아니라 의례였다.
예술은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매개였고, 종교는 그 매개를 통해 인간이 세계의 질서를 이해하려 한 시도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 예술은 종교의 품을 벗어나 독립했다.
신을 찬양하던 그림이 인간의 감정을 노래하게 되었고, 신전을 장식하던 음악이 인간의 내면을 탐구하게 되었다.
이 변화는 단순한 역사적 분리가 아니다.

그것은 신성의 체험과 미적 경험이 어떻게 다른가를 드러내는 인간 의식의 진화이다.


1. 신성의 체험: 절대적 타자와의 만남

종교적 체험의 본질은 만남이다. 그 만남은 인간을 넘어선 존재, 절대적 타자와의 접촉이다.
루돌프 오토는 이를 누미노제라 불렀다. 무섭고도 매혹적인 신비,경외와 전율의 감정이다.
이 체험 속에서 인간은 자신이 한없이 작아진다.
그는 우주의 질서 속에서 자신이 미미한 존재임을 깨닫고,
동시에 그 질서에 참여하고 있다는 거룩한 소속감을 느낀다.

 

이때 신성의 체험은 아름다움보다 더 근원적이다.
그것은 감탄이 아니라 항복, 감정이 아니라 존재의 변형이다.

 

따라서 종교적 체험의 중심에는 자아의 소멸이 있다.
자신을 비우고, 더 큰 존재와 하나가 되려는 욕망.
그것이 곧 경배의 행위이며, 신앙의 본질이다.


2. 미적 경험: 거리 속에서의 공감

반면, 예술의 경험은 거리감 속의 몰입이다.
예술 작품은 우리에게 다가오지만, 그것은 신처럼 우리를 압도하지 않는다.
우리는 예술을 바라보며 감탄하지만, 그 감탄 속에는 여전히 나가 존재한다.
칸트는 『판단력 비판』에서 미적 판단의 핵심을 이해 관심으로부터의 자유라고 했다.
예술은 우리가 세계를 소유하거나 이용하려는 욕망 없이 그 자체로 감상하는 순간에 성립한다는 것이다.
종교는 절대자와의 합일을 지향하지만, 예술은 타자와의 대화를 지향한다.
우리는 작품을 통해 감동하지만, 그 감동은 신성한 복종이 아니라, 존재의 공명이다.
미적 경험은 경배가 아니라 사유의 감정이다.
그것은 세계를 이해하려는 철학적 행위이자, 자아를 확인하는 반성적 경험이다.


3. 신성의 공간 vs. 미적 공간

종교와 예술은 공간을 다르게 다루며, 종교의 공간은 수직적이다
인간은 하늘을 향해 시선을 들고, 그곳에서 신의 권위를 느낀다.
성당의 첨탑, 사원의 불상, 제단의 형식 모두 신과 인간의 위계적 관계를 상징한다.

 

반면, 예술의 공간은 수평적이다.
그림 속 풍경, 무대 위 배우, 음악의 흐름은 우리와 같은 차원에서 존재한다.
그곳에서는 신의 목소리가 아니라, 인간의 숨결이 울린다.

 

이 차이는 인간이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의 변화다.
종교는 나는 신의 피조물이다라고 말하지만, 예술은 나는 창조의 일부다라고 말한다.
종교는 인간을 신 앞에 두고,예술은 인간을 세계 속에 둔다.


4. 신비의 언어와 형상의 언어

종교는 언어를 초월하려 한다. 기도, 주문, 침묵 , 모두 말 이전의 진동이다.
신성의 체험은 결국 말로 표현되지 않는 것에 닿으려는 시도다.
그러나 예술은 그 반대다.

 

예술은 말로 표현되지 않는 것을 형상화하려 한다.
그림, 음악, 시 모두 말의 경계를 넘어서는 또 다른 언어다. 따라서 종교가 표현을 넘어서는 침묵이라면,

 

예술은 침묵을 표현하려는 언어다.
둘 다 인간이 언어의 한계를 넘어
진실에 도달하려는 시도이지만, 방향은 서로 다르다.
예술은 침묵을 보이게’하고, 종교는 침묵 속으로 들어간다.

 

이 대조 속에 예술의 미학과 종교의 신학이 교차한다.


5. 예술과 신성의 경계 — ‘성스러운 예술’의 역설

역사적으로 예술은 종종 신성을 표현하는 도구였다.
비잔틴 성화, 르네상스의 성모상, 불교의 탱화, 이슬람의 기하학 문양, 이들은 모두 인간의 손으로 신을 형상화하려는 시도였다.
하지만 여기에는 근본적인 역설이 있다.
신성은 본질적으로 형상을 가질 수 없는 것,초월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인간은 신을 그리려 했다.


이 행위는 신을 모독하는 것이 아니라, 신을 이해하려는 인간이 욕망하는 표현이었다.
예술은 신을 만들어내려는’것이 아니라, 신을 느끼려는 시도였다.

 

결국, 성스러운 예술은 신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신의 부재를 느끼게 만드는 예술이다.
빛과 어둠, 존재와 부재의 경계를 통해 신성의 여운을 남기는 것. 그것이 진정한 종교적 예술의 힘이다.


6. 미적 체험의 초월성

그렇다면, 미적 경험은 종교적 체험보다 덜 초월적인가 하면 그렇지 않다.
예술도 인간을 일상으로부터 벗어나게 한다. 그 차이는 대상의 성격에 있다.
종교의 초월은 신으로 향하는 상승 운동이라면, 예술의 초월은 내면으로 향하는 심화 운동이다.
전자는 절대자와의 합일을, 후자는 자아와 세계의 일치를 지향한다.

 

예술은 세속 속의 초월이다.
종교가 천국을 상상한다면, 예술은 현실 속에서 천국의 감정을 만들어낸다.

인간은 신을 잃고 예술을 얻었다. 근대 이후, 신의 권위는 약화했지만 예술의 자율성은 강화되었다.
이는 단순한 대체가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 초월을 창조할 수 있다는 자각이었다.

 

예술은 더 이상 신을 찬양하지 않는다.

대신, 인간의 내면에 깃든 신성의 잔향을 탐구한다.신성의 체험이 인간을 신에게 이끌었다면,

 

미적 경험은 인간을 자기 자신에게 되돌린다. 그리고 그곳에서 우리는 깨닫는다.
아름다움이야말로 인간이 신성에 닿을 수 있는 마지막 통로임을. 예술은 종교의 그림자가 아니라,
신성을 인간 안으로 되돌려 놓은 새로운 신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