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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예술!

예술학65) 몸의 기억 — 움직임이 예술이 될 때

by taeyimoney 2025. 11. 13.

인간은 언어 이전에 몸으로 세상을 이해했으며 말보다 먼저 있었던 것은 움직임이었다.
심장의 박동, 호흡의 리듬, 손끝의 떨림, 시선의 흐름은 모든 신체의 반응은 내면의 감정을 외부로 번역하는 하나의 언어였다. 따라서 예술의 기원은 그 어떤 상징체계보다도 몸의 경험에 가깝다.

 

그 움직임이 일정한 질서와 리듬을 얻는 순간, 그것은 춤이 되었고, 시간과 공간 속에 배치될 때, 그것은 몸의 예술, 곧 퍼포먼스로 확장되었다.


1. 몸은 기억의 저장소다

몸은 단순히 생물학적 구조가 아니다. 그 안에는 감정, 습관, 사회적 규율, 역사적 경험이 각인되어 있다.
춤은 이러한 기억의 층위를 드러내는 가장 정직한 예술이다.

 

정신분석학자 피에르 자네는 기억은 두뇌보다 몸에 남는다라고 말했다.
몸은 우리가 말하지 못한 감정을, 잊었다고 믿은 시간을 여전히 간직한다.

 

예를 들어 현대무용가 피나 바우쉬는 자기 작품에서
몸의 기억을 주제로 일상의 움직임->손을 뻗는 제스처, 숨을 고르는 동작 을 정교한 무용 언어로 바꿨다.

 

그녀의 무대 위에서 무용수들은 사회적 억압, 사랑의 결핍, 그리고 무의식적 불안을 신체로 표현했다.
그 움직임들은 단순한 안무가 아니라, 인간이 살아온 시간의 축적이었다.


이처럼 몸은 역사를 담은 매체다. 국가, 문화, 젠더, 계급의 차이가 몸의 자세와 리듬으로 스며든다.
아프리카의 제의춤이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통로였다면, 현대의 거리 춤은 억압된 젊은 세대의 언어가 된다.
몸의 움직임은 언제나 사회적 맥락 속에서 의미를 재구성한다.


2. 움직임이 예술이 되는 순간

움직임은 모든 인간이 가진 가장 근원적인 표현 수단이다.
그러나 그것이 예술이 되려면, 단순한 운동을 넘어 의도와 인식, 리듬과 공간의 조율이 필요하다.
몸의 움직임이 생각을 담을 때 예술이 된다.
고대 그리스의 무용은 단순한 공연이 아니라, 신과 인간, 질서와 혼돈의 관계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종교적 행위였다.

 

르네상스 이후에는 발레가 등장하면서, 몸은 수학적 구조와 미의 질서를 따르는 완벽한 기하학적 예술로 발전했다.
하지만 20세기 초, 마사 그레이엄은 이런 전통에 반기를 들었다.

 

그녀는 인간의 몸이 격식이 아니라 감정의 진동을 표현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리하여 현대무용은 몸이 생각하는 예술로 재탄생했다.

그레이엄의 움직임은 근육의 수축과 이완, 호흡의 흐름,
무게 중심의 이동 등 몸의 물리적 반응을 그대로 무용 언어로 번역한다.

 

그녀의 작품은 관객에게 “이것이 슬픔이다, 이것이 분노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관객은 무용수의 몸에서 자신의 감정의 흔적을 발견한다. 이 지점에서 예술은 표현을 넘어 공감의 장으로 확장된다.


3. 신체 예술과 퍼포먼스의 확장

1960년대 이후, 몸은 예술의 중심 매체로 다시 등장한다.
화가들이 물감을 버리고, 조각가들이 대리석을 버리자 예술가들은 자신의 신체 자체를 작품의 재료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는 대표적이다.
그녀는 자신의 몸을 실험대에 올려, 고통·침묵·관계·시간을 탐구했다.

 

1974년 작품 〈Rhythm 0〉에서 아브라모비치는 자신 앞에 72개의 물건 꽃, 칼, 총, 깃털을 놓고
관객에게 “무엇이든 내게 해도 좋다”고 선언했다.
6시간 동안 관객은 처음엔 조심스러웠지만, 점점 폭력적으로 변했다.

 

그녀의 몸은 예술과 인간성의 경계를 드러내는 실험장이 되었다.
이 퍼포먼스는 몸이 단순한 표현의 수단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와 권력의 장을 드러내는 매체임을 증명했다.

현대 예술에서 움직임은 단순히 무용의 영역에 머물지 않는다.
디지털 아트, 인터랙티브 퍼포먼스, VR 퍼포먼스 등  
기술과 결합하며 몸의 존재감이 재정의되고 있다.

 

예를 들어, 모션 트래킹 기술은 무용수의 움직임을 자료화해 빛, 소리, 이미지로 실시간 변환시킨다.
이때 예술가는 더 이상 무대 위의 인간이 아니라, 움직임의 알고리즘을 설계하는 프로그래머가 된다.
이런 시도는 몸의 예술이 디지털 공간에서도 유효한가?라는 새로운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4. 사회와 기억, 몸의 정치학

몸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우리가 걷는 방식, 앉는 자세, 춤추는 몸짓에는
항상 사회적 규율과 권력이 작용한다. 페미니즘 미학에서는 여성의 몸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규제됐는지,
그리고 예술가들이 그 규율을 어떻게 깨뜨렸는지 탐구한다.

 

예컨대 일본의 부토는 전후 사회의 상처와 억압을 몸의 왜곡된 움직임으로 드러낸다.
그 춤은 아름답지 않지만, 진실하다. 그것은 기억된 폭력의 재현이자, 해방의 몸짓이다.

이처럼 몸은 저항의 언어이기도 하다.
거리 시위의 몸짓, 제스처, 집단적 행진은 정치적 의미를 넘어선 퍼포먼스적 행위다.
예술과 삶의 경계가 무너지는 그 순간, 몸은 살아 있는 예술이 된다.


5. 몸이 움직이는 예술

움직임은 단순한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몸이 생각하는 방식이며, 존재가 드러나는 언어다.

 

예술이란 결국 감정과 사유의 형상화이고, 몸은 그 형상화를 가능하게 하는 가장 원초적인 도구다.
오늘날 예술이 기술과 개념으로 멀어질수록, 우리는 다시 몸의 언어를 배워야 한다.
왜냐하면 인간이 진정으로 공감할 수 있는 것은 언어보다 먼저, 움직임의 리듬이기 때문이다.

몸이 흔들릴 때, 기억이 깨어난다.움직임이 반복될 때, 감정이 해방된다.
그리고 그 순간, 우리는 깨닫는다. 예술은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느끼는 것임을.

 

여러-움직임을-표현한-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