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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발효의 과학

발효학) 발효란 무엇인가 — 썩음과 생명의 경계

by taeyimoney 2025. 11. 10.

발효-된-콩-된장

우선, 발효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보통 살아 있는 음식을 떠올린다. 

김치, 된장, 치즈, 와인처럼 시간이 흐르며 맛이 깊어지는 음식들 말이다. 

하지만 발효의 본질을 묻는다면, 단순히 음식의 숙성 과정을 넘어 “죽음과 생명, 부패와 창조가 맞닿은 지점” 에 있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발효를 단순한 조리 기술이 아니라, 자연이 시간과 미생물을 통해 만들어내는 생명의 언어로 살펴보고자 한다.

 1. 발효의 정의 — 살아 있는 화학 반응
발효(fermentation)는 단어로는 라틴어 fervere, “끓다”에서 왔다.
이는 액체가 실제로 끓는 것이 아니라, 미생물의 대사 활동이 만들어내는 거품과 열기를 뜻한다.
과학적으론, 발효란 미생물이 산소가 부족한 환경에서 유기물을 분해하여 에너지를 얻는 과정 .

결국 생명체가 생존하기 위해 행하는 하나의 생화학적 전략이다.

효모는 당을 분해하여 알코올을 만들고, 유산균은 젖산을 만든다.
겉보기엔 단순한 변화지만, 그 속에선 수십 가지의 효소와 대사 경로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와인 한 잔, 김치 한 포기에도 수억 마리의 미생물이 협력하고 경쟁하며 미시적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그 속에서 인간은 자연의 흐름을 잠시 빌려, 시간을 맛보는 법을 배운다.

2. 썩음과 발효의 차이 — 미묘한 경계선 위의 질서
많은 사람은 발효와 부패를 혼동하는데 둘 다 미생물이 작용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하지만,
그 결과가 유익한 변화인지 파괴적 변화인지가 다르다.

부패는 미생물의 무질서한 확산이다.
영양분이 풍부한 환경에서 아무 제약 없이 번식한 미생물은 단백질을 분해하며 악취와 독소를 만드며,
그것은 자연의 순환이지만, 인간의 감각으로는 죽음으로 인식된다.

반면 발효는 인간이 미생물의 질서를 조율한 상태다.
/온도, 소금, 공기, 용기, 시간 / 이 다섯 가지 변수를 통해 인간은 미생물의 종류와 성장 속도를 조절하며,

미생물은 파괴 대신 변환을 선택한다.
단백질->아미노산, 탄수화물-> 알코올로, 죽은 재료는 새로운 맛으로 거듭난다.
그래서 발효는 단순한 보존 기술이 아니라, 죽음을 생명으로 되돌리는 조형 행위다.

3. 미생물의 시선에서 본 세계
우리는 흔히 미생물을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로 취급하지만,
실제로는 그들이 지구의 가장 오래된 생명체이자 가장 영향력 있는 생태 주체다.
지구의 대기를 만든 것도, 인류 이전에 산소를 생산한 것도 미생물이었다.

발효는 이런 미생물의 생태적 습성을 인간이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한 결과물이다.
예컨대 김치를 만드는 과정에서 유산균은 식물의 당분을 젖산으로 바꾸며, 산성 환경을 조성해 다른 세균을 제어한다.
이건 단순한 음식의 변화가 아니라, 미생물 사회의 충격적인 변화다.
균은 서로 경쟁하면서도 공존하며, 인간은 그 균형을 지켜주는 관리자가 된다.

호기심이 반짝 드는 점은, 전통적인 장독대나 치즈 숙성실 같은 공간이 단순한 저장소가 아니라

미생물이 사는 도시처럼 작동한다는 것이다.
그 안에는 온도·습도·통기성·재질이 모두 조율된 생태적 인프라가 존재한다.
그래서 장독대는 인간의 발명품이자, 미생물의 조용한 도시계획이라 부를 만하다.

4. 시간이라는 발효의 재료!
모든 발효의 본질에는 시간이 있으며 미생물에게는 성장의 공간이고, 인간에게는 기다림의 과정이다.
그 기다림은 단순한 지연이 아니라, 변화를 허락하는 용기다.


우리가 발효 음식을 좋아하는 이유는 맛 때문만이 아니라 기다림이라는 감정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즉, 발효는 인간이 시간을 먹는 행위이기도 하다.

 

예를들어, 된장이 숙성되는 1년 동안 효소들은 단백질을 아미노산으로 분해하며 맛을 깊게 만든다.
이건 화학적 변화지만 동시에 철학적 사건이다.
시간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이 물질의 맛과 향으로 변환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5. 발효는 기술이자 철학이다.
발효를 단순히 음식의 보존법으로 이해하면, 그것의 절반만 본 것이다.
발효는 자연과 인간이 공동으로 만든 문화적 기술이다.
자연은 변화를 제공하고, 인간은 그 변화를 통제하고 의미를 부여한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건 완벽한 통제보다는 불완전한 협력이다.
발효는 언제나 약간의 불확실성을 품는데, 날씨가 다르면 향이 달라지고, 항아리의 재질이 다르면 맛이 변한다.
그 변화를 수용하는 태도, 즉 자연의 자율성을 인정하는 인간의 겸손함이 발효 문화의 핵심이다.

따라서 발효는 인간 중심의 기술이 아니라 자연 중심의 공존적 기술이라 할 수 있다.
그건 마치 예술가가 물감의 농도나 붓질의 우연성을 받아들이듯,
장인은 미생물의 변덕을 포용하며 새로운 결과를 기다린다.

6. 썩음과 생명 사이 — 그 경계에 선 인간
우리가 썩었다라고 표현하는 현상은 사실 다른 생명에게는 시작의 신호다.
낙엽이 썩어 흙이 되고, 그 흙에서 새로운 생명이 싹튼다.
발효는 바로 그 순환의 언어를 가장 아름답게 드러내는 행위다.

 

/김치가 익어 가는 냄새, 막걸리의 거품, 치즈 표면의 흰 곰팡이 /

이 모든 건 부패의 징조이면서 동시에 생명의 증거다.
인간은 그 미묘한 경계를 감각적으로 구분하며, 자연의 리듬을 이해하게 된다.

그래서 발효는 과학이면서 동시에 감각의 철학이다.
그건 냄새와 온도, 기다림과 직감으로 이뤄진 몸의 과학이며,
죽음과 삶이 공존하는 경계에서 살아 있음을 재발견하는 기술이다.

7.발효는 인간이 만든 가장 오래된 문명 언어
인류는 불을 사용하기 전부터 발효했고, 야생 과일이 자연적으로 발효되어 술이 되었으며,

생선이 소금과 만나 젓갈이 되었다. 즉, 발효는 문명 이전의 문명, 인간이 자연과 대화하던 가장 오래된 언어다.

오늘날 우리는 인공지능, 자동화, 효율의 시대를 살지만
발효는 여전히 기다림과 관찰을 요구한다. 어쩌면, 우리가 자연과 관계 맺는 마지막 남은 느림의 방식일지도 모른다.

썩음과 생명 사이의 그 얇은 경계 / 그 위에서 인간은 여전히 미생물과 함께, 살아 있는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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