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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예술!

예술학2) 불완전함의 미학: 완벽하지 않기에 아름답다.

by taeyimoney 2025. 10. 27.

“완벽한 건 어쩐지 차갑다.”
누군가의 말처럼, 인간이 진심으로 끌리는 것은 언제나 조금은 어설픈 것들이다.
조금 기울어진 찻잔, 미세하게 다른 색의 벽, 손으로 그린 선의 떨림.
그 안에는 ‘사람의 흔적’이 남아 있다. 그리고 바로 그 흔적이 아름다움의 이유가 된다.

우리는 늘 완벽을 추구하지만, 진짜 아름다움은 그 반대편에서 태어난다.
도자기의 금이 간 틈을 금으로 메우는 일본의 전통 복원 기법 ‘킨츠기’는 그 상징적인 예다.
금이 간 그릇을 버리지 않고, 오히려 그 틈을 빛나게 만든다.
완벽함을 되돌리는 것이 아니라, 상처 자체를 하나의 예술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그 철학의 중심에는 ‘와비사비’라는 단어가 있다.
불완전함, 덧없음, 그리고 무상함 속에서 오히려 진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동양적 미학이다.

인간은 완벽함을 추구하지만 완벽하지 않은 온전한 자신을 혐오해서 더욱 강한 완벽함을 추구하는 것 같기도 하다.

완벽한 것은 정적이다.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불완전한 것은 늘 움직이고, 변화한다.
조금 깨진 모서리, 예상치 못한 얼룩, 손의 흔적은 그 사물이 ‘살아 있다’라는 증거다.
예술이란 결국 살아 있는 것의 기록이다.
그러니까 불완전함이야말로, 예술의 본질에 가장 가까운 형태다.

현대 사회는 우리에게 완벽을 강요한다.
SNS 속 사진은 필터로 다듬어지고, 제품은 오차 없이 생산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은 그 속에서 점점 더 진짜를 그리워한다.
공장에서 찍어낸 듯한 완벽함보다, 손끝에서 묻어난 우연과 흔적이 담긴 물건에서 위안을 느낀다. 진짜 모순적이지..
그것은 마치 “이건 사람이 만든 거야”라는 조용한 위로 같다.

그러면서 우리 자신은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는 메시지를 주는 듯하다. 

예를 들면 도자기를 빚는 장인은 안다.
조금의 실수와 예측 불가능한 결과가 작품을 ‘살아 있게 만든다’라는 것을.
가마의 온도, 흙의 수분, 손의 압력 그 어느 것도 정확히 계산할 수 없다.
그러나 바로 그 불확실성이 작품에 생명을 준다.
AI가 만들어내는 완벽한 대칭은 아름답지만, 생명은 없다.
왜냐하면 생명은 늘 흔들리고, 불안하며, 예측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내가 도자기를 빚을 때면 항상 비대칭으로 만들게 되는데  나는 대칭으로 만든 도자기를 완벽하다고 생각하여 

더욱 그렇게 되도록 계속 만들고 만들고 했었다.

 

근데 어느 순간 완벽하다는 것이 꼭 대칭으로 된 도자기가 아님을 깨닫게 되는 날이 있었다.

정말 딱 맞아 떨어진다는 , 한치의 오차가 없다는 것이 완벽하다는 말과는 다른 의미 일수 있겠다고 깨달은 것이다.

 

약간의 모자람, 부족함, 불완전함이 완벽하다는 의미로 정정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온전하고 완벽하여 티끌조차의 단점도 보이지 않는 사람을 우리는 흔히 매력이 없다고 얘기한다.

완벽한 사람에게 비로소 부족한 점을 보여주거나 본의아니게 들키게 되었을 때 사람들은 사람냄새가 난다고 얘기하며 그때부터 진정한 매력에 빠져든다고 생각한다. 

 

그런 것만 봐도 예술의 진짜 가치란 완성도가 아니라 ‘감정의 온도’에 있다.
완벽한 형태는 감탄을 주지만, 불완전한 형태는 공감을 준다.
공감은 인간을 연결하게 하고, 예술을 인간적인 것으로 만든다.
우리는 완벽한 작품 앞에서는 감탄하지만, 조금 부족한 작품 앞에서는 마음이 간다.
그건 아마 우리 자신도 불완전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완벽함에는 챙겨줄 것이 없어 필요가 없다고 느끼지만 부족함에는 챙겨줄 것이 많아 필요가 있다고 느낀다.

 

인간은 나를 필요로하는 것에서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을 주게되고 이끌리기 마련이다.

그래서 불완전함은 단순한 결함이 아니라, 인간다움의 증거다.
모든 생명은 태어나면서부터 어딘가 부족하고, 그 부족함 속에서 서로를 필요로 한다.
예술 역시 마찬가지다.
한 작품의 미세한 틈, 손의 흔적, 색의 번짐은 그 작품이 ‘누군가의 시간’ 속에서 만들어졌음을 증명한다.
그건 결코 기계가 흉내 낼 수 없는 감정의 언어다.

우리가 불완전함을 사랑하는 이유는, 그 안에 ‘완벽을 포기한 용기’가 있기 때문이다.
상처를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용기, 흠을 고치지 않고 아름다움으로 바꾸는 시선.
그건 단순한 미적 태도가 아니라, 인생을 대하는 철학이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아니, 어쩌면 그게 더 낫다.
불완전한 것들 속에 담긴 따뜻한 흔적이 우리를 인간답게 만든다. 예술은 완벽함의 반대편, 흔들림의 세계 속에서 피어난다.
결국, 아름다움이란 흠 없는 형태가 아니라, 흠을 품은 마음의 깊이에서 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더나아가 시간은 예술의 재료이자 적이다.
모든 예술은 시간 위에 만들어지고, 시간에 의해 변한다.

고대의 조각이 부서지고, 유화의 색이 바래며,음악의 울림이 공기 속에서 사라지는 그 순간조차 예술은 완성된다.
즉, 예술은 ‘사라짐의 미학’을 품고 있는 존재다.

시간이 흐를수록 예술은 새로운 의미를 얻는다.
과거에는 단순한 일상이었던 것이, 지금은 하나의 ‘문화적 유산’으로 남는다.

 

그건 예술이 순간을 넘어 기억을 저장하는 매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예술을 통해 과거의 감정을 복원하고,미래의 감각을 예견한다.
시간은 예술을 소멸시키지만 동시에 영원하게 만든다. 결국 예술은 ‘멈춰 있는 시간’이 아니라
‘흘러가는 시간의 흔적’을 아름답게 기록하는 방식이다.

 

우리모두 예술을 하는 사람들이다. 모두가 소중한 예술을 하고 있는 지금이다.

불완전함-불안함-예술을-하면서-결국-안정감을-찾는-모습
불완전함 에서 오는 편안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