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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예술!

예술학64) 소리의 색채 — 음악이 그리는 보이지 않는 풍경

by taeyimoney 2025. 11. 13.

우리가 음악을 들을 때, 종종 눈앞에 어떤 색이 떠오른다.
어떤 곡은 푸른 새벽처럼 느껴지고, 어떤 멜로디는 주황빛 노을처럼 다가온다.

 

소리는 본질적으로 보이지 않는 것이지만, 인간의 감각은 소리를 시각적 이미지로 번역한다.
이것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인간 두뇌의 복합적인 감각 연상 작용 때문이다.
예술의 세계에서 이러한 현상은 오래전부터 공감각의 융합으로 설명됐다.

음악은 시간 위에 그려지는 회화다.
회화가 빛과 색으로 공간을 그린다면, 음악은 음과 리듬으로 시간 속에 색을 만든다. 이 둘은 서로 닮았다.
한쪽은 정지된 풍경 속에서 울림을 만들고, 다른 한쪽은 움직이는 소리 속에서 풍경을 그린다.
그 사이에 인간의 감정과 상상력이 흐른다.


 1. 인간은 왜 소리를 ‘색’으로 느낄까?

소리를 색으로 느낀다는 것은 단순한 시적 표현이 아니다.
과학적으로도 청각과 시각의 감각 영역이 신경학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연구가 있다.

 

뇌의 측두엽과 후두엽이 동시에 자극될 때, 사람은 소리에서 색채적 감정을 느낀다.
이런 현상은 음악가와 화가들에게 오래전부터 영감의 언어로 존재했다.

 

러시아 작곡가 알렉산드르 스크리아빈은 “도는 붉은색, 레는 노란색, 미는 푸른색”이라고 말하곤 했다.
그는 실제로 이 감각을 바탕으로, 색과 음계를 결합한 작품 《프로메테우스: 불의 시》를 작곡했다.
연주와 동시에 무대 조명이 음에 따라 색을 바꾸며, 음악과 색이 하나로 융합되는 공연이었다.
스크리아빈에게 음악은 단순한 청각의 예술이 아니라, 빛과 소리가 동시에 진동하는 총체적 경험이었다.

이는 단지 특이한 천재의 발상만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 일상에서 비슷한 감각의 연결을 경험한다.
예를 들어, 높은음은 밝고 가벼운 색으로, 낮은음은 어둡고 무거운색으로 느껴진다.
이는 인간이 소리의 높낮이를 물리적 진동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며,

 

그 진동의 주파수가 시각적 명암의 대비와 유사한 감정 구조를 만들어낸다.
음악의 색채감은 우리의 감정이 시각화된 결과인 셈이다.


2. 음악과 회화의 관계 — 칸딘스키와 색의 울림

회화와 음악의 관계를 본격적으로 탐구한 예술가 중 하나가 바실리 칸딘스키였다.
그는 원래 법학도였지만, 음악을 듣던 중 색이 폭발적으로 눈앞에 펼쳐지는 경험을 하고 화가로 전향했다.

 

그의 대표작 《Composition VII》은 마치 거대한 심포니처럼 구성되어 있다.
색은 음처럼 반복되고, 선은 리듬을 타며 움직인다.
그는 색과 선을 통해 소리의 진동을 시각화했고, 그의 회화는 ‘눈으로 듣는 음악’이라 불렸다.

칸딘스키는 『예술에 있어서의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에서 이렇게 썼다.

“색은 건반, 눈은 해머, 영혼은 피아노이다.”

이 한 문장은 회화와 음악이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그에게 색채는 단순한 시각적 자극이 아니라 감정의 음향이었다.
따라서 그의 그림은 특정 장르의 음악처럼 조성을 갖고, 색의 대비는 화음처럼 긴장과 해소를 반복한다.

이러한 관점은 이후 수많은 추상화가와 음악가에게 영향을 미쳤다.
예를 들어, 프랑스 인상주의 음악가 드뷔시는 색채적 화성을 사용하여 소리로 빛의 흔들림을 표현했다.
그의 작품 《바다》나 《달빛》을 들어보면, 선명한 음의 윤곽보다는 번짐과 여백의 미학이 느껴진다.
이것은 마치 모네의 인상주의 회화처럼, 확실한 형태 대신 순간의 감각을 포착하려는 시도였다.


 3. 색을 작곡한 사람들 — 드뷔시, 라벨, 그리고 스크리아빈

음악사 속에는 색을 작곡의 핵심으로 삼은 인물들이 많다.
클로드 드뷔시는 빛과 그림자를 소리로 바꾸어 그린 화가 같은 작곡가였다.

 

그는 음악은 소리를 통해 색을 그리는 예술이라고 말하며, 하모니를 선명한 대조 대신 부드러운 음의 겹침으로 구성했다.
그의 음악은 마치 물결 위에 반사된 햇살처럼 흔들리고, 소리의 경계는 명확하지 않다.
이것이 바로 드뷔시 음악의 회화적 깊이다.

같은 시대의 라벨은 조금 다른 방식으로 접근했다. 그는 정교한 음색 조합으로 음악의 질감을 만들어냈다.
《볼레로(Boléro)》를 들어보면 반복되는 리듬 위에 악기들의 색이 차례로 쌓인다.
이것은 마치 화가가 캔버스에 붓질을 반복하며 색을 덧입히는 과정과 같다.

 

라벨은 오케스트라는 거대한 팔레트라고 말했는데, 그의 음악은 실제로 한 폭의 유화처럼 들린다.

이들의 음악은 결국, 색채의 대비를 통해 감정의 풍경을 그리는 회화적 작곡법이었다.
그들은 소리를 통해 빛을, 리듬을 통해 색의 질감을 구현했다.
이로써 음악은 눈으로 볼 수 없는 보이지 않는 회화로 진화했다.


4. 소리의 공간 — 현대예술 속의 사운드스케이프

20세기 후반 이후, 예술의 경계가 확장되면서 음악은 더 이상 무대 위에서만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사운드스케이프개념은 음악을 공간적 예술로 확장했다.

 

캐나다 작곡가 머레이 쉐이퍼는 도시의 소음, 자연의 울림, 인간의 발소리까지 모두 하나의 환경적 음악으로 간주했다.
그에게 세상은 이미 거대한 악보였다.
이 시각은 현대 설치 예술, 영상 예술, 퍼포먼스 아트로 이어지며 소리의 미학을 경험의 예술로 발전시켰다.

오늘날 우리는 전시관이나 미술관에서
소리를 시각적 장치와 함께 체험하는 예술을 쉽게 접할 수 있다.
디지털 사운드, 공간 음향, 인공지능 작곡 등 새로운 기술은 소리의 질감과 색채를 더욱 입체적으로 만들어낸다.
이러한 작품들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예술, 감각의 확장을 실험하고 있다.


 5.소리로 그린 마음의 풍경

음악은 보이지 않지만, 언제나 우리 내면의 이미지를 일깨운다.

소리는 공간을 가지지 않지만, 마음속에서는 풍경을 만든다. 그 풍경은 색과 빛, 그리고 감정으로 채워진다.
그렇기에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결국 감정의 색을 경험하는 일이다.

회화가 눈으로 그린 세계라면, 음악은 귀로 그린 세계다.

그리고 그 둘은 결국 인간의 감각과 감정이 만들어낸 하나의 동일한 예술 언어다.

보이지 않는 풍경 속에서, 우리는 색을 듣고, 소리를 본다.
이것이 예술이 주는 가장 신비로운 경험이며, 감각이 서로를 초대하는 순간이다.

 

소리를-듣는-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