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어릴 적부터 배워온 ‘창의성’이라는 단어는, 언제나 인간만의 능력처럼 여겨졌다.
창의성은 아이디어의 번뜩임, 상상력의 폭발, 감정의 표현, 그 어떤 알고리즘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인간의 고유한 영역이었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작곡하며
“창의적”이라는 찬사받는 요즘, 우리는 묻게 된다.
창의성의 주인은 정말 인간뿐일까?
1)창의성의 시작 — 인간의 불안과 호기심
창의성은 단순한 ‘새로운 발상’이 아니다.
심리학자 칼 로저스(Carl Rogers)는 창의성을 “자기실현을 향한 인간의 본능적인 움직임”이라고 정의했다.
즉, 창의성은 생존이 아니라 ‘의미’를 찾기 위한 본능이다.
우리가 새로운 것을 만들고, 표현하고, 다르게 생각하려는 이유는
단순히 이득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확장하고 싶기 때문이다.
화가가 캔버스를 채우는 이유,작곡가가 멜로디를 쌓는 이유,작가가 밤새 단어를 고르는 이유
그 모든 행위는 ‘나’를 세상에 이해시키려는 시도다. 창의성은 결국 자아와 세계의 대화다.
인간은 불안하기 때문에 창의적으로 된다. 무언가를 표현하지 않으면 자신이 사라질 것 같은 두려움,
그 불안이 예술을, 발명을, 그리고 혁신을 만든다.
그런데 AI는 불안을 느끼지 않는다.
AI는 자신의 존재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AI가 만들어내는 결과물은 점점 더 ‘창의적’으로 보인다.
우리는 여기서 혼란을 느낀다.
“감정도 불안도 없는 존재가 어떻게 창의적인가?”
2)알고리즘의 창의성 — 계산 속의 상상력
AI의 창의성은 인간의 그것과 전혀 다른 원리에서 나온다.인간은 내면의 감정에서 출발하지만,
AI는 데이터의 패턴에서 출발한다. AI가 새로운 그림을 만든다는 것은,
기존의 수천만 개의 이미지를 학습한 뒤, 그 안에서 ‘유사하지 않지만 익숙한’ 조합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건 마치 인간의 무의식이 기존 경험을 뒤섞어 새로운 꿈을 꾸는 것과 닮았다.
예를 들어, 생성형 AI ‘미드저니(Midjourney)’는 “고흐의 붓 터치로 그린 미래 도시”라는 문장을 입력하면
수많은 이미지의 패턴을 분석해 존재하지 않던 도시를 만들어낸다. 그 도시에는 인간의 손이 닿지 않았지만,
우리는 그 결과를 보고 ‘창의적’이라고 느낀다. 왜냐하면 그 결과가 우리의 상상 속 세계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AI의 창의성은 의도된 감정이 아닌, 우연의 아름다움에서 나온다.
알고리즘은 단지 확률적으로 새로운 조합을 시도하지만, 그 우연한 결과가 인간의 감정에 닿을 때,
우리는 그걸 ‘창의적’이라고 느낀다. 다시 말해, 창의성은 결과의 문제가 아니라 감정의 해석의 문제다.
3)인간의 창의성 — 혼돈 속의 의미 만들기
인간의 창의성은 AI의 그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모순적이다. 인간은 종종 실패하고, 감정에 휘둘리고, 모순적인 결정을 내린다. 하지만 바로 그 불완전함이 새로운 길을 만든다.
창의성이란 질서 속에서의 무질서를 허락하는 용기이기도 하다.
예술가 잭슨 폴록은 물감을 뿌리고 흘리고, 우연히 만들어진 형태를 작품으로 삼았다.
그의 그림은 기술적으로는 단순했지만,그 안에는 인간의 의식적인 혼돈이 담겨 있었다.
AI는 같은 작업을 흉내 낼 수 있다. 하지만 폴록이 물감을 던질 때의 불안, 분노, 희열
그 감정의 동력은 인간만이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창의성은 사실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능력’이라기보다,
‘혼돈을 받아들이는 태도’에 가깝다.
AI는 오류를 수정하려 하지만, 인간은 오류를 예술로 승화시킨다.AI는 논리적 완벽함을 추구하지만,
인간은 감정적 결함 속에서 진짜 의미를 찾아낸다. 이 차이가 바로 인간 창의성의 본질이다.
4)인간과 알고리즘의 협업 — 새로운 창의성의 형태
그렇다고 AI의 창의성을 단순히 ‘가짜’라고 치부할 수는 없다.
이제 예술의 많은 영역에서 AI는 공동 창작자로 활약하고 있다. 작곡가들은 AI가 제안하는 코드 진행을 바탕으로 새로운 멜로디를 만들고, 건축가들은 알고리즘이 설계한 구조에서 영감을 얻는다.
심지어 패션 디자이너들은 AI가 제시한 색감 조합으로 시즌 컬렉션을 완성하기도 한다.
이건 단순한 기술 협력이 아니다.
AI는 인간이 미처 보지 못한 패턴을 제시하고, 인간은 그 패턴에 감정과 의미를 입힌다.
둘이 함께할 때, ‘창의성’은 한층 넓어진다. 인간은 상징과 감정을 해석하고,
AI는 데이터와 확률을 탐색한다. 서로 다른 두 개의 두뇌가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내는 셈이다.
예를 들어, 예술가 **레피크 아나돌(Refik Anadol)**의 설치작품은
AI가 수백만 개의 데이터 이미지를 학습해 시각적으로 ‘꿈꾸는 듯한’ 형상을 만들어낸다.
관람자는 그 움직임 속에서 인간의 감정을 투사한다.
AI가 제공한 형식 위에 인간의 감정이 덧입혀질 때, 비로소 ‘새로운 형태의 창의성’이 완성된다.
이건 더 이상 인간 대 알고리즘의 대결이 아니라, 인간과 알고리즘의 공진화다.
창의성의 본질은 어디에 있는가
결국 창의성의 주인은 누구일까? AI일까, 인간일까?
정답은 아마도 ‘창의성은 관계 속에 있다’ 일 것이다.
AI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하더라도,그걸 창의적으로 느끼는 것은 여전히 인간이다.
AI가 만들어낸 결과물이 예술이 되는 순간은, 그것을 바라보는 인간이 감정을 느낄 때다.
즉, 창의성은 행위가 아니라 경험이다.
AI가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릴 수는 있지만, 그 시의 슬픔을 ‘느낄’ 수는 없다.
그래서 인간은 여전히 창의성의 중심에 있다. AI가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그 결과물에 의미를 부여하는 건 인간의 마음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AI 덕분에 인간의 창의성은 더 깊고 넓어지고 있다. AI가 제시하는 수많은 조합과 가능성은,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새로운 감정을 탐색하게 만든다. 결국 인간과 AI의 관계는 경쟁이 아니라 확장이다.
AI가 인간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창의성을 새로운 차원으로 밀어 올리는 것이다.
5)창의성의 미래는 ‘공유된 상상력’이다
미래의 예술, 미래의 창의성은‘한 사람의 천재’가 아닌 ‘공유된 상상력’의 시대가 될 것이다.
AI와 인간, 작가와 알고리즘이 함께 상상하고 만들어가는 세상. 그 속에서 인간은 더 이상 창의성의 유일한 주인이 아니라,
감정과 의미를 부여하는 해석자가 된다.
창의성의 본질은 결국 감정에서 출발한다.AI가 아무리 정교하게 계산하더라도,
그 결과물에 의미를 부여하는 건 인간의 마음이다. 그렇기에 진정한 창의성의 주인은 여전히 인간이다.
다만 그 인간은 이제 기술과 함께 진화하는 인간이다.
우리는 더 이상 ‘인간 vs 알고리즘’의 시대에 살지 않는다.
이제는 ‘인간 + 알고리즘’의 시대다. 창의성의 주인은 하나가 아니라, 함께 존재한다.
그리고 그 협업의 끝에는, 우리가 아직 상상조차 못 한 새로운 예술의 세계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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