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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예술!

예술학34) 예술과 정체성 — 나를 그리는 예술, 나를 잃는 예술

by taeyimoney 2025. 11. 6.

1.“나는 누구인가?”라는 오래된 질문
예술의 시작은 언제나 한 인간의 내면에서 비롯된다.
그림을 그리는 손, 조각을 다듬는 손,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는 손은  
결국 자기 자신을 탐색하는 행위다.

“나는 누구인가?” 이 질문은 단순한 철학적 의문이 아니라,
예술가에게는 작품의 가장 깊은 원천이다.

정체성(identity)은 ‘나를 정의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나를 구속하는 것’이다.
그리고 예술은 그 경계를 넘나들며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한 몸부림을 남긴다.

2. 자화상 — 거울 속의 나, 혹은 타인
자화상(Self-portrait)은 정체성을 탐구하는 예술의 대표적인 형식이다.
르네상스 시대의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ürer) 는
〈모피 코트를 입은 자화상〉에서 자신을 거의 신처럼 묘사했다.
그의 시선은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고, 그는 인간이 신의 피조물일 뿐 아니라 창조자임을 선언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자화상은 불안과 분열의 상징이 되었다.
빈센트 반 고흐의 자화상들은 자기 내면을 쪼개듯이 그리고 또 그렸다.
거울 속의 고흐는 언제나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고,
그는 그림 속에서 ‘나’를 찾으려다 끝내 잃어버렸다.

이처럼 예술가가 자신을 그릴 때,
그 행위는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자기 인식의 실험이다.
그 안에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끝없는 추적이 숨어 있다.

3. 사회 속의 ‘나’ — 정체성의 거울로서의 예술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예술의 ‘나’는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니었다.
예술은 사회 속에서, 타인의 시선 속에서 정의되기 시작했다.

흑인 여성 예술가 카라 워커(Kara Walker)는 실루엣 형식의 흑백 벽화를 통해
미국 사회의 인종차별과 젠더 권력을 폭로했다.
그녀의 작품 속 인물들은 단순한 그림자가 아니라, 역사 속에서 지워진 존재들의 형상이다.

이처럼 정체성은 사회가 만들어낸 거울이다. 우리는 타인의 시선 속에서 자신을 규정하고,
그 규정은 종종 폭력적이다.

예술은 그 폭력의 구조를 해체하고, ‘나는 누구인가’를 ‘우리는 누구인가’로 확장한다.

4. 젠더와 자아 — 예술 속에서 다시 태어나는 여성
오랫동안 예술의 주체는 남성이었다. 여성은 캔버스 위의 ‘뮤즈’로 존재했지만,
자신의 목소리를 가질 수 없었다.

그러나 20세기 중반 이후, 여성 예술가들은 시선의 권력을 뒤집기 시작했다.

신디 셔먼(Cindy Sherman)은 자신의 몸을 이용해 수십 가지 여성 캐릭터로 변신하며 사진을 찍었다.
그녀의 작품은 “여성은 사회가 만들어낸 이미지다”라는 급진적인 선언이었다.

프리다 칼로(Frida Kahlo) 역시 자신의 고통과 신체적 장애, 멕시코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화폭에 정직하게 그려냈다. 그녀의 자화상 속 상처와 눈물은
‘아름다움’ 대신 ‘존재의 증거’를 말한다.

예술은 그렇게 억압된 주체의 언어가 되었고,
여성의 시선은 이제 세계를 다시 그리기 시작했다.

5. 정체성과 기억 — 예술이 시간과 싸우는 방식
정체성은 시간과 깊이 얽혀 있다. 기억이 없다면, ‘나’라는 개념도 존재할 수 없다.
사진작가 세바스티앙 살가두(Sebastião Salgado) 의 인물 사진은
한 사람의 얼굴에 새겨진 ‘역사’를 담는다. 그의 렌즈는 개인의 얼굴 속에서
시대의 슬픔과 생존의 이야기를 읽어낸다.

또한 빌 비올라(Bill Viola) 의 영상 설치작품은
시간의 흐름을 극도로 느리게 확장시켜, ‘나의 기억’이 ‘보편적 경험’으로 변하는 순간을 포착한다.

예술은 이렇게 개인의 기억을 사회의 기억으로 전환한다.
정체성은 고정된 자아가 아니라, 시간 속에서 끊임없이 재구성되는 흐름의 과정이다.

6. 정체성의 해체 — 포스트모던의 자아
포스트모던 시대의 예술은 “자아는 더 이상 단일하지 않다”라고 선언했다.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는 음악과 패션을 통해 끊임없이 자신을 바꾸었다.
그는 ‘나’라는 정체성을 하나의 무대, 하나의 역할로 받아들였다.

야요이 쿠사마 역시 반복되는 점과 패턴 속에 자신의 정신적 세계를 드러냈다.
그녀의 작업은 개인의 내면을 사회적 공간으로 확장하며,
“나를 잃는 과정에서 오히려 나를 찾는다”라는 역설을 제시한다.

이 시대의 예술은 젠더정체성의 불안을 감추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예술의 에너지로 바꾼다.

불안은 창조의 원동력이며, 혼란 속에서 새로운 ‘나’가 태어난다.

7. 정체성의 확장 — 디지털 시대의 또 다른 자아
SNS와 메타버스의 시대,
우리는 하나의 ‘자아’로는 살아갈 수 없다.

온라인에서의 우리는 필터와 아이디, 프로필 사진으로 구성된 하나의 가상적 캐릭터다.

이 디지털 자아는 현실의 나보다 더 꾸며지고, 더 확장되며, 때로는 더 진짜처럼 느껴진다.

예술가들은 이 새로운 정체성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라파엘 로자노-헤머(Rafael Lozano-Hemmer) 는
관람자의 얼굴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합성하는 인터랙티브 작업을 통해, ‘나’가 더 이상 고정된 존재가 아님을 시각화했다.

이제 예술은 물리적 자아를 넘어,
가상의 나, 데이터로서의 나를 그리기 시작했다.

8.나를 그리는 예술, 나를 잃는 예술
정체성을 탐구하는 예술의 여정은
결국 ‘나를 이해하려는 시도’에서 시작되지만, 그 끝에서는 언제나 나를 해체하는 용기로 끝난다.
 
예술가는 자신을 정의하려다 결국 경계를 무너뜨리고, 그 파편 속에서 새로운 자아를 발견한다.

예술은 나를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다시 묻는 일이다.

예술의 위대함은 답을 제시하는 데 있지 않다.
그것은 오히려 끝없이 흔들리는 질문의 형태로 남는다.

정체성은 결코 고정된 초상화가 아니다.
그것은 계속 덧칠되고, 지워지고, 다시 태어나는 살아 있는 캔버스다.

그리고 예술은 그 끝없는 변화의 과정을
가장 아름답게 기록하는, 인간 존재의 영원한 초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