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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예술!

예술학32) 예술과 정치 — 권력은 예술을 두려워한다

by taeyimoney 2025. 11. 6.

1.“예술은 중립일 수 있을까?”
예술은 종종 ‘정치와는 거리가 먼 순수한 영역’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예술의 본질이 인간의 감정과 현실을 다루는 일이라면, 정치와 무관할 수는 없다.

정치는 권력을 조직하는 기술이고, 예술은 인간의 내면을 해방시키는 행위다.
따라서 예술이 진실을 말할 때, 그 진실은 언제나 권력의 언어와 충돌한다.

권력은 침묵을 원하고, 예술은 목소리를 낸다.
그래서 권력은 언제나 예술을 두려워한다.

2. 예술과 권력의 오래된 관계
예술과 정치의 관계는 고대 문명부터 시작됐다.
이집트의 파라오는 자신의 신성을 과시하기 위해 거대한 피라미드를 세웠고,
로마 황제들은 조각상과 건축물을 통해 제국의 영광을 시각화했다. 이 시기 예술은 ‘권력의 장식물’이었다.

하지만 르네상스 시대에 들어서면서 예술은 미묘하게 변한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 같은 예술가들은
교황이나 귀족의 후원을 받으면서도, 그 권력에 도전하는 시선을 작품에 담았다.
〈천지창조〉 속 아담과 신의 손끝은 단순한 종교적 상징이 아니라,
인간이 신과 나란히 서려는 인문주의적 선언이었다.

예술은 그렇게 권력의 도구로 태어나,
언젠가 권력의 대항 언어로 성장한다.

3. 검열과 저항 — 예술이 통제될 때
예술이 권력에 의해 가장 두려워되는 순간은 그것이 진실을 폭로할 때다.

 

20세기 초, 독일의 화가 오토 딕스(Otto Dix) 는
전쟁의 참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전쟁 삼부작〉으로 군의 검열을 받았다.
그의 그림에는 영웅이 없었다. 오로지 피와 공포, 그리고 무너진 인간만이 있었다.

나치 정권은 이러한 예술을 “퇴폐 예술(Entartete Kunst)”이라 부르며
수천 점의 작품을 몰수하고 불태웠다.
예술은 권력의 선전에 방해되는 진실이었고, 그 진실은 ‘불온’이라는 이름으로 삭제됐다.

비슷한 일이 현대에도 반복된다.
러시아의 여성 예술 집단 푸시 라이엇(Pussy Riot) 은 정치 비판적 공연으로 체포되어 구속되었다.
그들의 행위는 단순한 퍼포먼스가 아니라, 예술을 통한 정치적 언어의 확장이었다.
예술은 권력이 가장 감추고 싶어 하는 것을 비춘다. 그래서 언제나 통제의 대상이 된다.

4. 예술의 정치적 언어 — 이미지가 만드는 혁명
예술은 총이나 구호보다 더 깊이 사람의 마음에 남는다. 그것은 감정의 언어로 정치적 현실을 흔든다.

스페인의 화가 파블로 피카소의 〈게르니카〉는 그 대표적인 예다.
이 거대한 흑백 캔버스는
1937년 스페인 내전 중 나치의 폭격으로 파괴된 마을의 참상을 그렸다.
그림 속 사람과 동물은 모두 고통 속에 비틀리고, 빛은 끊기고, 절규는 화면 전체를 삼킨다.

〈게르니카〉는 전쟁 반대의 상징이 되었고,
그 이후 세계의 수많은 반전운동의 포스터와 깃발에 복제되었다.
그림 하나가 국제정치의 담론을 움직인 것이다.

예술은 말보다 오래 남는다. 그것은 논리를 넘어 감정으로 기억되고,
감정은 결국 행동을 낳는다.

5. 선전과 예술 — 이용당하는 아름다움
그러나 예술이 언제나 저항의 편에만 서 있는 것은 아니다. 권력 또한 예술의 힘을 잘 안다.
히틀러는 예술을 “민족의 순수성을 시각화하는 도구”로 삼았다.
스탈린은 예술가들에게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강요하며
체제에 유리한 영웅적 이미지만을 그리게 했다.
그 결과, 예술은 현실을 반영하는 거울이 아니라 권력을 미화하는 거짓의 무대가 되었다.

이것은 단지 과거의 일이 아니다. 오늘날에도 정치권력이나 기업은
광고, 영화, 축제, 전시 등 문화의 형태로 자신들의 이미지를 세련되게 포장한다.

“예술은 권력의 손에 들리면 선전이 되고,
진실의 손에 들리면 혁명이 된다.”

예술가의 윤리와 의식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6. 동시대 예술과 정치적 발언
21세기 들어 예술은 더 이상 갤러리 안에만 머물지 않는다.
거리, SNS, 디지털 화면이 곧 전시장이다.

에이아이 웨이웨이(AI Weiwei) 는 중국 정부의 인권 탄압을 예술로 폭로하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의 작품 〈태양 꽃씨〉는 수백만 개의 도자기 씨앗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는 개인의 목소리가 체제 속에서 얼마나 쉽게 흩어지는지를 상징한다.

또한 뱅크시(Banksy)는 익명의 거리예술가로, 세계 곳곳의 벽에 사회적 메시지를 남긴다.
그의 그래피티는 자본주의, 전쟁, 환경 문제를 풍자하며
대중에게 묻는다. “누가 세상을 이렇게 만들었는가?”

현대 예술가는 더 이상 고립된 천재가 아니다.
그들은 사회적 참여자이며, 예술을 정치적 대화의 장으로 확장한다.

7. 예술, 권력의 균열 속에서
예술은 권력의 적이 아니다.
그러나 예술은 언제나 권력의 균열을 드러낸다.

권력이 침묵시키려는 이야기를 예술은 시각화한다.
권력이 외면한 고통을 예술은 형상화한다.
권력이 조작한 진실을 예술은 해체한다.

이것이 예술의 정치적 본질이다 — 권력의 언어를 인간의 언어로 번역하는 행위.

8. 예술은 결국 ‘자유의 증언’이다
예술은 혁명을 만들지 않는다. 하지만 혁명을 상상하게 만든다.

피카소의 〈게르니카〉, 푸시 라이엇의 노래,
뱅크시의 벽화, 에이아이 웨이웨이의 설치미술은
모두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언어”였다.

정치는 체제를 만들고, 예술은 그 체제의 틈을 드러낸다.

예술은 총 대신 붓으로 싸우고, 권력은 그 붓을 가장 두려워한다.

그렇기에 예술은 언제나 불편해야 한다.
그 불편함이 바로 자유의 징표이기 때문이다.

피카소의-작품-게르니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