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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예술!

예술학58) 예술과 시간: ‘영원함’을 꿈꾸는 인간의 본능

by taeyimoney 2025. 11. 13.

예술은 시간을 붙잡으려는 인간의 가장 오래된 시도다.
벽화에서 시작해 디지털 아트에 이르기까지, 인간은 사라지는 순간을 붙잡고, 유한한 존재로서 영원을 상상해 왔다.
그렇다면 예술은 왜 이토록 시간에 저항하는가? 예술은 단순히 기록이 아니라,
흘러가는 시간에 맞서는 인간 의식의 형상화이기 때문이다.


1. 시간은 예술의 재료이자 적이다

예술가에게 시간은 역설적인 존재이며 한편으로는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의 흐름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작품을 낡게 하고 사라지게 만드는 소멸의 힘이다.
미켈란젤로가 대리석을 깎는 동안, 그의 시간은 조각 속으로 스며들었다.
반 고흐가 밤하늘을 그릴 때, 그의 짧은 생은 캔버스 위의 소용돌이로 변했다.

 

시간은 모든 것을 파괴하지만, 예술은 그 파괴의 한가운데에서 멈춤의 환영을 만든다.
그것이 예술의 첫 번째 마법이고 시간을 멈추지는 못하지만, 그 흐름 속에서 형태를 부여하는 힘이다.

 

예술은 언제나 시간의 흔적을 남기는 동시에, 시간에 의해 닳아 없어지는 존재다.


2. 예술은 기억의 구조로서 존재한다

예술은 인간의 기억이 외부화된 형태다.
인류가 언어를 갖기 전에도, 동굴 벽화와 토템은 공동체의 경험과 신화를 담았다.

 

예술은 집단적 기억의 매개체, 시간을 넘어 경험을 공유하는 도구였다.

이때 예술은 단순히 과거의 재현이 아니다.
기억은 언제나 재구성되고, 예술은 그 재구성의 과정을 통해 시간을 재해석한다.

예를 들어, 피에르 보나르의 그림은 빛과 색채가 실제와 다르게 변형되어 있다.
그는 눈앞의 현실을 그리지 않고, 기억 속에서 다시 피어난 현실을 그렸다.
그의 예술은 “지나간 시간의 감각”을 복원하는, 기억의 미학이다.
예술이란 결국 사라진 것의 재현이 아니라 사라진 이후에도 남는 감각의 형상화다.

 

그 감각이 존재하는 한, 시간은 완전히 흐르지 않는다.


3. 시간은 예술 속에서 순환한다

시간은 직선이 아니라, 예술 속에서는 순환의 형태로 나타난다.
고대 예술에서 원형은 영원과 재생의 상징이었다.

 

불교의 만다라, 모더니즘의 반복 패턴까지 인간은 끝나지 않는 형태를 통해 영원성의 감각을 시각화했다.

이 순환의 미학은 현대에도 이어진다.
비디오 아티스트 빌 비올라의 작품은 슬로우모션과 반복을 통해 시간의 순환을 체험하게 한다.
그의 영상 속 인물들은 물속에 잠기고, 다시 떠오르며, 생과 사, 시작과 끝이 구분되지 않는 시간의 리듬을 드러낸다.
예술은 이렇게 시간의 직선을 끊고, 그 속에서 순환하는 의미를 만들어낸다.
그리하여 예술은 단지 영원을 꿈꾸는 행위가 아니라, 시간이 끝나지 않도록 만드는 기술이 된다.


4. 예술가의 시간 — 창조의 체험

예술가에게 시간은 단지 흐르는 것이 아니라, 체험되고 변형되는 주관적 차원이다.

한스 게오르크 가다머는 예술 감상 행위를 시간의 융합이라 불렀다.
과거의 작품을 바라보는 순간, 현재의 우리가 그 안에 자신을 투영하며
과거와 현재가 교차한다는 것이다.
예술은 이처럼 시간의 경계를 허문다.

 

보는 이의 감각 안에서 과거의 창조 행위가 현재로 다시 살아난다.

모든 예술 행위는 이 시간의 융합을 전제로 한다.
작가는 미래의 관객을 상상하며 작품을 만들고, 관객은 과거의 작가와 대화하듯 그것을 감상한다.

 

그 순간, 예술은 단지 과거의 산물이 아니라 시간을 초월한 대화의 장이 된다.


5. 영원함을 꿈꾸는 인간의 심리

인간은 죽음을 인식하는 유일한 존재이고 그 인식은 공포이자 동시에 창조의 원동력이다.
우리가 예술을 만드는 이유는 죽음 이후에도 남고자 하는 무의식적 욕망과 연결되어 있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창조 욕구를 죽음 본능의 반작용으로 해석했다.

 

소멸을 인식한 인간은 본능적으로 영속의 흔적을 남기려 한다.
예술은 그 흔적의 정점이다. 사라질 운명을 자각한 존재가 만들어낸 시간에 대한 저항의 서명!

시인은 언어로, 화가는 빛으로, 조각가는 돌로 자신의 시간을 남긴다.
그것은 나는 존재했다라는 선언이며, 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라는 희망이다.
예술이 영원함을 꿈꾸는 이유는 그 꿈 자체가 인간의 존재 이유이기 때문이다.


6. 현대 예술과 시간의 해체

그러나 현대 예술은 영원보다는 순간의 강렬함에 집중한다.
퍼포먼스 아트나 설치미술은 일시적이고, 사진과 영상은 덧없음을 전제로 한다.
이러한 휘발성의 미학은 시간에 대한 현대인의 감각 변화를 반영한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퍼포먼스 〈The Artist is Present〉는 지금을 예술로 만든 대표적 사례다.

 

그녀는 700시간 넘게 관객과 마주 앉아 있었다.
그 행위는 기록될 수 있지만, 그 체험의 감정은 오직 그 순간에만 존재했다.

이런 예술은 시간에 맞서 싸우는 대신, 시간 속으로 자신을 던지는 방식으로 초월한다.
영원을 남기기보다 지금을 완전히 사는 것, 그것이 현대 예술이 선택한 또 다른 시간의 철학이다.


7. 시간과 예술의 윤리 — 무엇을 남길 것인가

예술은 영원을 추구하지만,남겨진 것은 언제나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다시 해석된다.
남김은 곧 책임의 문제다.
기억은 단순한 저장이 아니라,
새로운 세대가 다시 해석하며 살아내는 과정이다.

따라서 예술이 남기는 것은 단지 형태가 아니라, 생각의 가능성이다.
예술은 그 가능성을 통해 과거를 현재화하고, 현재를 미래로 확장한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영원함의 구조이다.


8. 시간의 끝에서 예술은 무엇을 말하는가

우주는 팽창하고, 모든 것은 사라질 운명이다.
그럼에도 인간은 계속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만들고, 시를 쓴다.

 

이 행위는 무모하지만, 동시에 가장 인간적이다.
예술은 시간의 종말을 인식한 존재가, 그럼에도 창조를 멈추지 않는 행위다.

 

예술은 죽음을 거부하는 게 아니라,죽음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
예술은 영원히 남기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완전히 살아내기 위해 존재한다.

 

그 순간이 쌓여 하나의 흔적이 되고, 그 흔적이 모여 영원의 착각을 만든다.

그 착각 속에서 인간은 위안을 얻고, 다시 다음 세대를 향해 창조를 이어간다.

예술은 시간을 멈추지 못하지만, 의미를 남긴다
예술은 결코 시간을 이기지 못한다.
그런데도 인간은 시간 속에 자신을 새기며, 사라지는 존재로서 존재의 증거를 남긴다.

시간은 모든 것을 지워도, 의미는 남는다.
그 의미의 잔향 속에서 인간은 여전히 영원을 꿈꾸는 존재로 남는다.

예술은 바로 그 꿈의 기록이다. 사라짐 속에서 피어나는 가장 완전한 인간의 저항이다.

 

무한굴레에서-영원한-존재